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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뇽 저
2,200원
2023-12-26
로맨스
전1권
979-11-7115-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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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우리 둘이서 바다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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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었다.
바다를 보여주겠다고 했었다.
“나중에 우리 둘이서 바다를 보러 가자.”
어두컴컴한 지하실.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곰팡이 냄새 가득한 그 지하 골방에서 퍽퍽한 맛이 나는 빵을 뜯어 내 입에 넣어주며 오빠는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바다가 뭐야?”
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도, 동화책으로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동화책 한 권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이 들고 기억이라는 것이 생겨날 때부터 나는 지하실 골방에 갇힌 채로 나갈 수 없었고 나의 세상은 온통 그 3평 가량의 네모나고 어두운 공간이 전부였다.
오빠가 문을 열고 들어와 줄 때만 내 세상에는 빛이 스며 들어왔다.
“딸기 우유 먹자.”
오빠는 항상 뭔가를 가져다줬다.
오빠의 주머니에서는 항상 좋은 것이 나왔었다.
“발 얼었네.”
발가락이 새빨갛게 되도록 얼어붙던 날, 오빠는 자기 양말을 벗어 내게 신겨줬다.
“주아야.”
오빠가 날 그렇게 부를 때의 다정함은 햇살 같았다.
“주아야. 나중에 꼭 함께, 바다에 가자.”
그 말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오빠와 함께 바다에 가는 것.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오빠는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오빠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날, 오랫동안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고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나를 그 지하실에서 데리고 나갔다.
“오빠는요?”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다시 시설이라는 곳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나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독한 인간들인지, 애는 죽거나 말거나 버려두고 자기들끼리 도망을 쳤다네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죽여서 땅에 묻었다는데, 어디에 묻었는지 아무도 모른데요. 도망친 인간들을 잡기 전에는 어디 묻힌 곳이나 알겠어요.]
[아들은 친자식이었잖아요. 그런데 왜 죽였지?]
[모르죠.]
[쟤는 친딸은 아닌 거죠?]
[유괴했다는데, 친부모가 찾지 않았대요. 애가 유괴당한 후에 친부모는 그대로 이민을 갔다네요.]
[왜요?]
[모르죠.]
그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어른들의 말이었다.
나는 시설에서 일년 가까이 살았고, 그 후에 [입양]을 갔다.
나를 입양한 분들은 의사부부였고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내 방을 가졌고, 내 인형을 가졌고, 예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오빠가 보고 싶었다.
오빠가 보여준다고 했던 바다가 보고 싶었다.
*
“네가 권주아냐?”
교도소 철문을 열고 나온 주아를 기다리고 있던 건 모르는 남자였다.
양복을 말쑥하게 빼입은 남자는 주아에게 두부를 내밀었다.
“이런 거 먹는다고 하더라.”
“누구세요?”
주아는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런데 자신을 어떻게 알고 두부를 내미는 걸까.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아는 걸까.
“네 오빠가 보냈어.”
그 순간 주아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바다를 떠올렸다.
오빠의 바다였다.
양부를 죽인 죄로 교도소에서 2년 동안 징역을 살고 나온 권주아.
그녀의 앞에 나타난 일명 [오빠가 보냈다는 사람].
죽은 줄 알았던 오빠는 살아있는 걸까.
살아있다면 오빠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제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걸까.
오빠가 보냈다는 남자 승호는 주아를 위해 집을 마련해주고 옆에서 돌봐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주아는 이 현승호라는 남자가 결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감방에 몇 번은 들락거렸을 사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주아의 목적은 오빠를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오빠한테 전해줘요. 바다는 언제 보러가냐고.”
그러자 승호가 말했다.
“그 바다. 나하고 보러가자.”
그 순간 주아는 어쩌면 승호가 오빠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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