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다른 세계에 발 딛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친구.
하지만 내겐 어릴 때부터 봐왔던 그저 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구나 연하는 남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친구 같은 동생이 지금 내 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
“그래, 누나가 그러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부정해.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늘 내가 그렇다 하면 그런가보다 못 이기는 척 넘어가주던 차건주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건지, 이번의 너는 호락호락 넘어갈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부정 안 하면 뭐가 달라지냐고? 너랑 내 관계가 달라지겠지. 좋아하면서도 아닌 척, 염병 같은 네 연애 들어주는 것도 집어치울 거고.”
나는 폭격을 맞은 사람처럼 차건주의 고백을 듣고 있었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해봐도 폭주하기 시작한 차건주는 오로지 직진뿐이었다.
“네가 그렇게 볼 때마다 존나 꼴린다고, 솔직하게 말하냐고.”
본심을 드러낸 차건주는 미친 게 분명했다.
나는 그야말로 얼빠진 사람처럼 태연하게 지껄이는 그 낯을 보고 있었다. 움직일 수도, 달아날 수도 없는 덫에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걸린 것 같았다.
여느 때와 같았지만 여느 때와 달랐다. 마치 숨겨놓은 발톱을 꺼낸 짐승처럼.
아니, 어쩌면 나는 알지 못하는, 네가 속한 그 세계의 네 모습일지도 몰랐다.
나라서 그저 발톱을 숨기고 있었던 것뿐이었을지도.
“내가 깡패 새끼라서 그래? 나는 안 되는 게 그거 때문이야?”
감출 수 없는 욕망과 속상함, 서러움, 그리고 질투. 오만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눈동자가 나를 얽맸다.
“사람을 병X 만들어놓고, 너도 책임은 져야 이게 맞잖아.”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차건주의 삶에 발을 들이는 게 두렵고, 한편으론 그럼에도 네가 영영 멀어져버리는 건 싫다.
우리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 될까.
내 속마음을 모를 리 없는 네가 이젠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두 번 다시, 허울 좋은 친구 나부랭이는 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