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한테 팔 건 하나밖에 없는데.” 무도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가 내 가슴을 노골적으로 바라봤다.
※본 작품은 강압적인 관계 등 호불호가 나뉘는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용 시, 참고 바랍니다.
불야성처럼 빛나는 도심의 야경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DNR(do not resuscitate의 약어. 소생술 포기 서약서를 뜻한다)에 사인했어.’
하진이 죽는다. 지난 십 년 동안 그와 비슷한 선고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이토록 직접 와닿기 처음이었다.
‘이기적으로 굴지 마. 그거 다 네 죄책감 덜자고 하는 짓 아니야?’
시진의 비수 같은 말에 뺨이 화끈거려 한마디도 할 수 없었음에도.
아무도 나의 의견을 묻지 않고, 하진의 치료에 어떤 결정도 내릴 권리가 없음에도.
“뭐든 할 것 같은 얼굴이네.”
“네 말대로 뭐든 할게.”
“놀라운데. 태하진이 아직도 너한테 이런 힘을 발휘한다는 게.”
“하진인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아아, 첫사랑.”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 왔다.
시진이 본가를 나가 머무는 펜트하우스에.
“네가 나한테 팔 건 하나밖에 없는데.”
무도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가 내 가슴을 노골적으로 바라봤다.
“병원 먼저, 해결해 줘.”
비릿하게 웃은 시진이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DNR 건, 없던 일로 하죠.”
나른함이 사라진 새까만 눈동자에 담긴 건 명백한 경고였다. 흥을 깨트린 대가로 곱게 대하지 않겠다는 남자의 서슬 퍼런 경고.
시진이 성큼 다가와 내가 움켜쥐고 있는 블라우스 앞섶을 틀어쥐었다. 양손으로 잡고 찢을 듯이 단숨에 벌린다. 내 손은 그 힘에 밀려 툭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