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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한 저
25,200원
2022-08-30
BL
전6권
979-11-6938-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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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데 그게 어떻게 내 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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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가장 혼란스럽고 아프던 소년기에 만나, 어엿한 어른이 된 현재까지도 늘 서로의 곁에 있었다. 세월을 갑옷처럼 두른 우정은 단단했다. 두꺼운 갑옷 아래서 지선욱은 우정이 아닌 사랑을 키웠다.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않으려는 절박함을 짝사랑의 동력으로 삼으며.
스물아홉의 가을, 이지훈이 그렇게 묻기 전까지는 평생 숨기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그 시간 동안 너한테 사귀는 여자 이야기 한 번 못 들어본 거에 대해 생각을 안 해 봤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더는 숨길 수 없음을 깨달은 지선욱은 남자를 만난다고 순순히 자백했고, 미뤄두었던 고백을 마지막으로 둘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선욱을 잡겠다고 찾아온 이지훈은 그 결론부터 부정했다. 넌 나를 사랑한 게 아니고, 그러니 이게 우리의 끝일 수는 없는 거라고. 믿을 수 없다면 증명이라도 하겠다며 지선욱의 퇴로를 틀어막았다.
“어떤 약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도망가?”
단호한 이지훈의 손에 이끌려 둘이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 위에 섰다.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우정의 낭떠러지에 서서야 깨닫는다. 사랑임을 증명하고 있는 건지, 혹은 사랑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건지 더는 확신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일을 함께 마주하면서.
[발췌]
“나 남자 만나.”
이지훈은 예상했던 것처럼 그 흔한 멍한 표정조차 짓질 않았다. 나를 빤히 보다가 이내 뭐라도 말할 것처럼 입을 열려는 놈을 본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지훈이 뭔 말을 하려는지는 몰라도, 들을 말보다는 앞으로 할 말이 중요했다.
“근데 너한테 여태까지 한 번도 그 이야기를 안 한 건.”
이지훈의 얼굴을 바라보며 너무나 오래되어 녹이 슬어버린 것 같은 고백을 꺼내 본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열아홉 살에, 스물세 살에. 그리고 언젠가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될 날이 오면 그때는 꼭. 그러니까, 한 번쯤은 말이야. 내가 내 입으로 너한테 직접 말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한 남자가 너였거든.”
이지훈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마치 어떤 근육을 움직여서 반응해야 하는지조차 까먹은 듯한 놈을 보며 쓴웃음을 삼켰다. 이 상황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미뤄뒀던 고백을 하는 이 순간은 결국 열아홉도 아니고, 스물셋도 아니고, 내가 너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 순간도 아니라는 게.
“하필… 내가 제일 오래 좋아한 남자가 너라서.”
“…….”
“그래서 그랬다. 미안하다.”
그러니까.
“우리… 연락하지 말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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