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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맨 눈, 뜯는 손톱

꿰맨 눈, 뜯는 손톱 19

1,800
상세정보
  • 월간 포포친 1,800 2021-01-08 로판 전1권 979-11-6470-689-1
  • 적국에서 포로로 잡혀 온 백발의 예언자, 아라. 아래아국의 젊은 왕, 주. 고자인 그는 아라를 처음 본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휩싸이게 되는데….
  • *본 소설은 외전 증보판입니다. 다소 피폐한 묘사와 성관계 등 호불호가 나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전하, 제 눈을 뜯어주세요."

    그 순간, 더없이 달큼한 유혹이 왕을 뒤흔들었다.

    "소원을 이뤄드릴게요."

    적국에서 포로로 잡혀 온 백발의 예언자, 아라.
    꿰맨 눈의 예언자는 눈을 뜨고 처음으로 각인한 자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다고 한다.
    아래아국의 젊은 왕, 주.
    고자인 그는 아라를 처음 본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는 성욕에 휩싸이게 되는데….

    ***

    “고자에게 이리 홀딱 빠진 건 너뿐일 거다.”
    평상시 냉랭한 왕은 몸속의 열을 방출하지 못하기에 주기적으로 사나운 광증에 시달렸다.
    문득 모든 것에 화가 치밀고, 시야에 들어오는 족족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광증을 앓고 나서 벌써 달이 두어 번 차올랐다.
    그에 빠져나갔던 바닷물이 밀려오듯 신경이 바짝 곤두서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번에도 그랬다. 왕은 하찮은 선행에 전부를 내어줄 양 맹목적인 아라를 신랄하게 비웃고 싶었다.
    너 같은 건 마침 나타난 써먹기 딱 좋은 성노리개라고 말이다.
    너는 나의 놀잇감이다.
    야멸차게 단언하고 싶었으나, 정작 왕은 엉뚱한 말을 내놓았을 뿐이다.
    “아라야, 입.”
    자동으로 벌어진 입술 새로 허겁지겁 왕의 혀가 쑥 들어찼다. 아라의 말랑한 입안 점막이 그의 험악한 속내를 도닥거렸다.
    “하으,”
    서로의 콧날이 뺨에 파묻힐 만큼 입맞춤이 깊어졌다. 설왕설래하는 새콤한 접문에 다시금 몸이 뜨끈해졌다. 왕이 씨근덕대는 만큼 아라의 헐떡임도 한층 가빠졌다.
    “아라야, 내게 사랑받고 싶으냐.”
    들썩거리며 편한 체위를 찾다가, 왕이 아라를 이불에 눕혀 그 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랑이 무엇인가요.”
    아라가 자연스럽게 왕을 다리 사이에 끼웠다. 제 가슴을 양껏 움켜쥔 왕의 손등을 포개며 고개를 기울인다.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유일한 한 사람을 더없이 귀애하고 아껴주는 것이 사랑 아니겠느냐.”
    “아, 그런가요.”
    욕심의 또 다른 이름을 사랑이라 부르나 보다. 또 한 가지 배웠다. 감탄한 아라가 혼자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전하를 사랑할래요.”
    “…….”
    “당신을 귀애하고 아껴줄래요, 전하.”
    때때로 아라는 앞이 보이는 것처럼 왕을 바라보았다. 지금처럼.
    똑바로 왕을 마주한 아라가 손을 뻗어 그의 턱을 간질였다. 왕이 종종 그녀에게 하던 버릇이 옮은 듯했다.
    불현듯 심장이 짜부라드는 고통이 왕을 덮쳤다.
    아라의 고백이 기습처럼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숨도 못 쉬게끔 만든 것이다.
    “넌 벌써부터 예쁜 말 예쁜 행동 하는 데 도가 텄다.”
    왕이 짐승처럼 사납게 목을 울렸다. 그가 고개 숙여 아라의 목줄 아래 쇄골을 있는 힘껏 짓씹었다.
    “예언자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한 왕조를 멸망시켰을 게 틀림없다.”
    홀리는 재주를 타고난 여자는 나라를 망치는 독초다.
    의복보다 물 한 잔을, 자유 대신 눈을 찌르는 불빛을 조금만 줄여달라 요청한 이 여자는 분명히 독초였다.
    왕은 사랑받고 싶냐 물으니, 사랑을 주겠다 대답하는 여자에게 서서히 잠식되고 있음을 절절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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