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의지, 그가 정말 원했던 목적과 상관없이 두 남녀를 둘러싼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며 둘의 운명도 급속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는 딜레마와 아이러니가 혼재한다. 요한 폰 트리에를 차분히 관찰하고 있노라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나의 눈은 저도 모르게 늘 그를 좇고 있었다. 은밀하고 용의주도하던 그 관찰은 어느 날 작은 결실을 이뤄서 그의 일탈을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어느새 코너에 몰린 것은 한나 쪽이 되어 버렸다.
“당신같이 헤픈 암캐의 이마고(imago)… 표상으로 낙인찍힌 여자와 얽혀서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섹스할 때는 둘만 있으면 되고.”
7년 전 인연이 무색할 만큼, 예상보다 더 잔혹하고 저열한 남자는 한나의 조용했던 일상에 짙은 암운과 소란을 드리우며 심신 모두 유희의 도구로 휘두르길 서슴지 않고….
“네가 뭘 하고 싶은지, 그런 좆같은 걸 묻는 게 아니잖아. 내가 언제 네 의사를 물었어? 시키는 대로 해. 몇 대 처맞고 울면서 박히기 싫으면.”
“날 좋아해도 상관없어. 얼마든지 좋아해. 하지만 난 아냐. 나한테는 그런 감정 기대하지 마, 한나. 너 같은 여자 때문에 내 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은 바라지 않으니까. 내겐 결혼할 최적의 상대도 있어.”
쾌락과 모멸, 열락과 수치를 동시에 안기던 남자는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려는 한나를 붙잡아 더 깊은 나락으로 빠뜨리려 하는데….
“정말 모르겠어. 왜 널 보면 이렇게 혼란스러운지. 이게 과연… 한시적인 욕망에 불과할까? 이 미칠 것 같은 열망이.”
한나의 의지, 그가 정말 원했던 목적과 상관없이 두 남녀를 둘러싼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며 둘의 운명도 급속히 회전하기 시작한다.